よくわからない事柄の一つに
天平3年7月乙亥条の
*乙亥,定雅樂寮雜樂生員。大唐樂卅九人,百濟樂廿六人,高麗樂八人,新羅樂四人,度羅樂六十二人,諸縣儛八人,筑紫舞廿人。其大唐樂生,不言夏蕃,取堪教習者。百濟、高麗、新羅等樂生,並取當蕃堪學者。但度羅樂,諸縣、筑紫舞生,並取樂戶。
の記事である。
直木孝次郎他訳註の『続日本紀』(東洋文庫、平凡社)によると度羅楽は済州島、つまり耽羅の舞だという。これに対して、田辺尚雄氏は「インド系舞」だと主張する。度羅樂の六十二人に及ぶ楽人は多い。『令集解』巻4の古記にある通り、度羅舞に定見はないが、度羅が銅鑼だとすれば、興味深い想像が可能だろう。
令集解 第1 (国書刊行会本) - 国立国会図書館デジタルコレクション (ndl.go.jp)
『続日本紀』天平勝宝元年12月丁亥条に、聖武天皇が東大寺に行幸したときに、
* 丁亥,八幡大神禰宜尼-大神朝臣-杜女,其輿紫色,一同乘輿。拜東大寺。天皇、太上天皇、皇太后,同亦行幸。
是日,百官及諸氏人等,咸會於寺。請僧五千,禮佛讀經。作大唐、渤海、吳樂,五節田儛、久米儛。因奉大神一品,比咩神二品。とあり、「大唐、渤海、吳樂,五節田儛、久米儛」が演じられた。
`
参考資料1)
①『續々群書類從 第11 宗教部』 国書刊行会/編纂 八木書店古書出版部 2013.4
p.18-47「東大寺要錄卷第二」
東大寺大仏開眼供養会についてはp.41-46の「供養章第三」の中に記載があります。
② 『大日本仏教全書第121巻 東大寺叢書 第1』 仏書刊行会/編 仏書刊行会 1915.3
国立国会図書館デジタルコレクションのインターネット公開
< https://dl.ndl.go.jp/info:ndljp/pid/952825 >
参考資料2)百済楽
나라시대(奈良時代, 553∼794) 일본에 소개된 백제악은 ‘쿠다라가쿠’라고 불리었으며, ‘시라기가쿠’라고 불린 신라악(新羅樂) 및 코마가쿠라고 불린 고려악(高麗樂)과 함께 삼국악(三國樂) 또는 삼한악(三韓樂)이라고 알려졌다. 백제악을 포함한 삼국악은 ‘토가쿠’라고 불린 당악(唐樂)과 더불어 일본의 아악(雅樂)을 형성하는 데 뼈대 구실을 하였으며, 현재 일본 전통음악인 가가쿠(雅樂)에 전승되고 있다.
『일본서기』권19에 의하면 554년 백제악사 시덕(施德) 삼근(三斤), 계덕(季德) 기마차(己麻次), 계덕(季德) 진노(進奴), 대덕(對德) 진타(進陀) 등 4인이 554년 이전에 일본에서 활약하였던 악사들과 교대하기 위하여 파견되었다고 한다. 이들은 백제 악생들을 거느리고 일본의 왕립 음악기관인 가가쿠료(雅樂寮)에서 연주활동을 하였다.
백제 멸망 뒤인 702년 백제악은 백제 악사 4인과 백제 악생 20인에 의해서 가가쿠료에서 전승되었으며, 713년에는 백제 악생이 20인에서 26인으로 증원되었다.『일본후기(日本後記)』권17에 의하면 809년에 활약하였던 백제 악사 4인은 횡적(橫笛)·군후(ꜭ篌)·막목(莫目)·무(舞)를 가르쳤다.
그 뒤 848년 백제 악생 20인은 7인으로 감원되었다가 인명천황(833∼849) 때 가가쿠료의 개편에 따라서 백제악은 신라악과 더불어 고려악으로 통합되었다. 백제악사와 악생들에 의해 3세기 가량 가가쿠료에서 연주되었던 백제악은 백제에서 연주되었던 연향악(宴享樂)의 하나로 노래와 춤도 포함하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백제악(百濟樂)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aks.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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